전남대학교 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 허민 교수의 책이다. 박진영 님의 책 [박진영의 공룡열전] 에 대한 서평을 쓴 적이 있으니 ([박진영의 공룡열전] 2판에서는 내가 서평에서 지적한 부분을 많이 반영하고 저자후기에도 언급해주었다) 국내 공룡연구자의 책이 또 하나 나왔다는 소식에 얼른 구입했다.
허민 교수는 EBS 에서 제작한 [한반도의 공룡]에 자문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띠지에도 “‘점박이’의 아버지” 라고 적혀있다. 점박이는 물론 [한반도의 공룡]에 등장하는 주인공 타르보사우루스다.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은 네이버 고생물카페 등지의 고생물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환빠공룡” 이라고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한다. 비판의 요지는 타르보사우루스가 한반도에서 발견된 적도 없는데 왜 “한반도의 공룡”이냐는 것.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한반도가 지금과 같은 반도의 모양을 하고 있었을 것 같지도 않은데 “한반도의 공룡”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자문을 했다고 해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었을 리는 만무하니 (잭 호너가 쥬라기공원 시리즈의 자문을 맡았지만 영화 속 벨로키랍토르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이 고생물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라) [한반도의 공룡]의 문제를 허민 교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말기로 하자. 일단은.
책은 크지 않은 판형(반양장본 197*133mm), 200쪽이 조금 안 되는 분량에 34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화석 사진 등의 도판이 들어가 있고, 각 꼭지가 홀수쪽에서 시작하는 것을 감안하면 각 꼭지의 분량은 4~5쪽 정도가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깊이있게 설명하기는 힘든 분량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전체 내용의 구성은 우리나라에서 공룡 연구를 꾸준히 해온 연구자답게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부터 익룡 발자국, 많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발견된 몇몇 공룡 골격화석 등.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발견된 여러 화석들 중 어떤 것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중생대 어류 화석이라든가 곤충 화석 같은 것들.
문제는, 읽으면서 석연찮은 사항들이 꽤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아래는 그럴 때마다 책장 귀퉁이를 접어놓았다가 옮겨적은 것들이다.
- p.20: 공룡은 파충류도 조류도 아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무리의 동물일지도 모른다. ->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공룡은 파충류, 그 중에서도 지배파충류의 일종이고, 조류는 공룡의 일종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공룡연구자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하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볼까? “영장류는 포유류도 사람도 아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무리의 동물일지도 모른다.”
- p.22: 미국 텍사스 주의 플럭시 강 유역에서는 거대한 용각류와 수각류의 보행렬이 나란히 발견되었는데 -> 이건 문제가 있다고 하기는 힘든데, 플럭시 강은 Paluxy River 다. 영문 병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한글표기를 보고 영문을 알아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위 “창조과학” 쪽에서 인간과 공룡의 발자국이 같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장소가 “팔룩시 강” 이라고 많이 표기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 발음은 찾아봤는데 확실히 “플럭시”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 같다. “팔룩시”라고 해도 잘 알아들을 것 같긴 함.
- p.23: 근처에서 화산이 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룡들은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는데 상부층으로 갈수록 화산재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은 갈수록 화산 폭발이 더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공룡들은 지능이 낮았거나, 세상을 초월한 ‘안전 불감증’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 이것도 무슨 소리인지 영… 화산 폭발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공룡들이 천천히 재 위를 걸어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상부층으로 갈수록 화산재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표현을 볼 때 이 지층은 상당한 기간을 두고 형성되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오랜 기간동안 지층이 형성되고 중간중간에 화산재가 끼어들어가는 것과 공룡이 어느 순간 화산재 위를 걸어가는 것은 타임스케일이 전혀 다르다. 상식적으로 공룡들은 화산 폭발이 그 순간에 막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화산재가 쌓여 있는 땅 위를 걸어서 이동해 다녔겠지… 화산재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상부층으로 가는 그 타임스케일은 수천 년일 수도, 수백만 년 일 수도 있는데 ‘안전 불감증’이라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 p.26: 날로 고탄소화되어 가는 당시 한반도 대기 속에서 -> ‘고탄소화’라는 건 학술용어인 걸까? 보통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고 하지 않나?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서 적어봄.
- p.27: 코엘로사우루스(Coelurosaurs)나 마그노아비페스(Magnoavipes)의 발자국과 비슷하다 -> 여기 뿐만 아니라 책 전체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공룡 무리의 명칭을 이탤릭체로 표기한 것이 많다. “코엘로사우루스(Coelurosaurs)” 는 아마도 코엘루로사우리아 (Coelurosauria)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수각류 공룡 중 새와 티라노사우루스류를 포함하여 주로 깃털이 있는 종류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코엘로사우루스”라는 한글표기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원래 자끄 고띠에가 80년대에 수각류 중에서 테타누라 (Tetanurae) 를 몸집이 큰 것은 카르노사우리아, 작은 것은 코엘루로사우리아로 나누면서 만들어진 명칭이고 후에 덩치가 아니라 계통발생학적 기준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지면서 티라노사우루스 등의 몸집 큰 수각류들도 코엘루로사우리아로 분류되었다.
- p.35: 기후의 변화는 대륙들 간의 이동에 다른 분포 변화와 관련 있다. -> 한국어 문장이 상당히 이상하다. 의미는 간신히 알겠지만.
- p.46: ‘이어붙인 이빨’이라는 뜻의 제우클로돈(Zeuglodon)이라 이름을 다시 붙여 주었다. -> 독일어도 아닌데 ‘g’ 를 ‘ㅋ’ 으로 표기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더군다나 Zeuglodon 은 유효한 학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명이라고 붙여진 것인데 이탤릭체로 표기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 p.48: 슈퍼사우루스(Supersaurus) -> 학명의 라틴어표기법을 따른다면 수페르사우루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p.74: 학자들은 태아 화석을 보고 알의 주인이 어떤 공룡인지를 추측한다. -> 이런 경우는 ‘배아’ 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데..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 ‘태아’라는 단어는 흔히 포유류의 출산하기 이전 새끼를 가리키는 단어 같은데.
- p.77: 우리나라는 용각류와 조각류, 수각류 모두가 서식했던 곳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양육 방식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 정말? 세 종류가 같이 서식했던 곳이 설마 우리나라밖에 없을까. 전혀 믿을 수 없다.
- p.82: 알들을 다 낳은 상태에서 앞다리나 주둥이로 알을 옮겼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알을 소중히 다루는 어미의 입장에서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 소중히 다루는 것과 앞다리나 주둥이로 알을 옮기는 것의 연관성은 대체 무엇일까… 알껍질은 생각보다 단단하니 충분히 다리나 주둥이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새들도 알을 품다가 고루 데워지라고 발로 굴려서 방향을 바꾸지 않던가?
- p.92: 재밌는 사실은 이 방해석 결정들이 알의 내부를 가득 채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만 자라고 멈췄다는 것이다. 당시 과거의 공기가 유입되다가 차단되어 방해석이 성장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표준 과학 연구원에서 추출한 공기 대부분이 중생대의 공기가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국제 논문으로 제출했으나 출판이 거절되었다. 한마디로 이 공기가 중생대 백악기 공기라는 사실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 방해석의 결정이 성장하는 것은 보통 용액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공기가 유입되다가 차단되어 방해석이 성장을 멈춘 것으로 본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출판이 거절되었다는 말에서 약간의 억울함이 느껴지는데… 아니 그러면 그 공기가 백악기 공기라는 사실을 입증하지도 않은 채 논문을 제출했단 말인가? 이건 좀 어이가 없다.
- p.96: 캐나다 캘거리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드럼헬러에 왕립 티렐 고생물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 2층 전시실에는 대형 암모나이트 몸체에 규칙적으로 구멍이 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이 구멍을 만든 주범은 어룡이었다. 육식 공룡이나 어룡의 이빨은 마치 범죄 현장에 남겨진 총알과도 같다. -> 암모나이트의 몸체에 구멍이 난 흔적은 과거에는 모사사우루스의 이빨 자국이라고들 생각했다. 어룡이 아니라. 그런데 이 글을 보고 티렐 고생물박물관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http://www.tyrrellmuseum.com/media/2010-11abunearthedfactsht.pdf 암모나이트 껍질에 난 구멍은 가장자리가 매끈한 것으로 보아 (대형 해양파충류가 이빨로 깨문 자국이라면 가장자리가 거친 모양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복족류의 일종인 삿갓조개(limpet)가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어룡 얘기는 처음 듣는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 p.103: 놀랍게도 비교적 최근에 깃털 공룡의 깃털 화석에서 멜라닌 세포 입자들이 발견되었다. -> ‘멜라닌 세포 입자’ 라는 표현이 상당히 이상한데, 공룡의 깃털 화석에서 발견된 것은 세포내 소기관인 ‘멜라노솜’의 흔적이다.
- p.113: 또한 ‘해남 우항리에서 발견된 흔적’ 이라는 뜻의 새로운 익룡 학명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Haenamichnus uhangriensis)’가 등재되었다. -> 해남이크누스는 익룡의 학명이 아니라 흔적화석인 ‘익룡 발자국’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걸 혼동하면 매우 곤란하다. 내가 알기로 해남이크누스라는 흔적화석을 만든 익룡의 골격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고, 그게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별도의 이름이 붙여져야 하므로 해남이크누스를 익룡의 학명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 p.117: 2002년에 그 성과를 정리한 논문이 150년 전통의 세계적 지질학 학술지인 영국의 《지질학 저널(Geological Journal)》에 출간되었다. -> 이 논문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는데, 허걱, 이럴 수가! 《지질학 저널 (Geological Journal)》이란 학술지에는 해당 논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뭐지? 하고 저자 이름과 해남이크누스 등을 가지고 구글신께 여쭈었더니 그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지질학 매거진 (Geological Magazine)》이라는 신탁을 내려주시었다. 단순한 실수겠지만… 쩜쩜쩜.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해당 논문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Hwang, K. G., Huh, M., Lockley, M. G., Unwin, D. M., & Wright, J. L. (2002). New pterosaur tracks (Pteraichnidae) from the Late Cretaceous Uhangri Formation, southwestern Korea. Geological Magazine, 139(4), 421-435. - p.122: 이 이빨은 람포림쿠스류(Rhamphorhynchus)의 것과 유사하나 -> 오타. 람포린쿠스류. 그리고 속명인 람포린쿠스(Rhamphorhynchus)를 지칭하는 것인지, 람포린쿠스를 포함하는 익룡 무리인 람포린쿠스과(혹은 람포린쿠스류 Rhamphorhynchidae)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다. 아마도 람포린쿠스과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 p.133: 새를 제외한다면, 악어는 공룡이 속한 집단인 조룡류(祖龍類)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 조룡류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설명한 바 있다. 최근에 관련 내용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지배파충류라고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 p.141: 실러캔트와 같은 경골어류 등이 등장했다. -> 라틴어 학명의 한글 표기에 대해서는 좀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Coelacanth 를 영어식 발음에 가깝게 실러캔스라고 표기하든, 라틴어 학명 읽는 식으로 코엘라칸트 (혹은 코일라칸트) 라고 표기하든 한쪽으로 하면 좋겠다.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영어식도 독어식도 아닌, 라욜라 해변 (La Jolla beach)이라는 기묘한 표기가 생각나버렸다.
- p.142: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어류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육식 공룡인 스피노사우루스류(Spinosaurs)가 등장했다. (중략) 다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수각류 발자국들 중에서 스피노사우루스류의 것이 존재할 확률도 있다. -> 역시 스피노사우루스류 (spinosaurs) 를 학명처럼 첫 글자 대문자에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학명을 쓰려면 정확히 Spinosaurus 라고 쓰던가. 그리고 뒤의 문장은 근거가 전혀 없지 않나. 수각류 발자국들 중에서 스피노사우루스류의 것이 존재할 확률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연구자가 저런 문장을 쓰려면 뭐라도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 p.157: 규조류(Diatom)는 조류의 종류로서 황조 식물로 분류하기도 하고, 규조식 물문으로 독립시키기도 한다. -> 규조식 물문은 띄어쓰기가 잘못되었다. 규조식물문(門, Phylum)이라고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건 편집 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전체 꼭지가 34개고 중간에 컬러도판이 별도의 용지에 인쇄되어 각 꼭지에 맞게 번호가 붙어 있으나.. 마지막 두 개의 그림은 번호가 안 붙어있다.
사실은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조금씩 엿보이는 민족주의적 경향이랄까, 그런 것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책제목인 [공룡의 나라 한반도]에서도 약간 느껴지는데, 한반도는 반도지 왜 나라야.. 그리고 중생대에는 동해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일본과 현재의 한반도, 그리고 현재의 중국이 모두 하나로 붙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시절에는 한반도라는 지형 자체도 없었는데..?
전반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었다. 국내에서 발견 및 연구된 공룡(및 각종 화석들)에 대한 더 좋은 책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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