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윤신영 – 인류의 기원: 독후감 part 2

혹은 책을 읽다가 눈에 뜨인 몇 가지 논점들에 대한 내 생각. 실수로 앞부분이 먼저 올라가서 별도의 글로 씁니다. 독립적인 글의 성격이 있기도 해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것도 괜찮네요.

식인풍습과 식인종

문: 식인종이 공중목욕탕에 가서 사람들이 탕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답: ‘누가 내 밥에 물 말아놨어?’

요즘은 유머가 트위터와 카톡과 페북으로 전파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주된 경로였던 80년대의 대표적인 유머 시리즈 중 하나로 식인종 시리즈가 있었다. 물론 여기서 식인종은 검은 피부색을 한 아프리카의 “미개한” 부족 출신이다. 지금 보면 썰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독하게 인종차별주의적인 유머이니 해서는 안되겠지. 어쨌거나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탓에 식인종이란 개념이 나에게는 다분히 희화화 되어있다. 때문에 생각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정리를 좀 해봐야 한다.

식인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부터가 문제다. 끼니 때마다 항상 사람고기를 먹는 집단이 있다면 이 집단을 식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집단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 자신과 비슷한 지력과 체력을 가진 사냥감을 주식으로 삼는다면 거꾸로 자신이 상대편의 식사가 될 확률도 상당히 높을 테니 설혹 그런 집단이 나타난다고 해도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와 정반대로, 일반적인 구성원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식단에 사람고기가 한 번도 포함되지 않는다면 확실히 식인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테고, 21 세기를 사는 인류는 (한니발 렉터 정도를 제외하면) 이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 제의의 일부로 죽은 사람의 살을 먹는다거나, 전쟁에 이긴 후 상대편을 잡아먹는 것, 그리고 때때로 집단 외부의 동물을 사냥해서 먹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같은 종에 속하는 사람이었을 경우, 정도를 식인 시나리오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희화화된 식인종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오늘날 문명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세 가지 시나리오들 중 어느 것이든 간헐적으로라도 일어난다면 그 집단은 ‘식인종’ 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식인종’ 이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다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식인풍습을 지닌 인구집단’ 이라고 해두자.

책에서는 식인행위는 있었지만 식인종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없다’ 고 결론내린 ‘식인종’ 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앞 문단의 예에서 사람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집단을 식인종으로 보았다면 그건 허수아비에 가깝다. 과거의 식인행위 흔적을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오늘날의 극한적인 상황을 대입해 너무 호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극한적인 상황은 그만큼 드문 것이니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도 매우 적다. 인류 화석 표본이 전부 다 해서 몇 점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인행위의 증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면 극한적인 상황에서만 식인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책에도 식인행위로 추정되는 사례가 여럿 나열되어 있고, 이 블로그에서도 구석기 유적의 식인풍습 증거, 식인인지 장례의식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체에 손을 댄 경우 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인류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에서 동족섭식 사례는 오래전부터 보고되어 있었으니, 인류의 조상도 기회가 되면 자신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외부인을 사냥감으로 삼았을 가능성은 높다. 문화와 도덕과 규범이 발달하면서, 그리고 ‘저들’ 과 ‘우리’ 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학습하면서 식인행위가 점차 없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저들’ 과 ‘우리’ 를 본능적으로 구분하는 습성이 여전히 많은 폭력과 차별을 낳고 있긴 하지만… 핑커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를 보면 그래도 상황은 꾸준히 나아져가고 있는 것 같으니 희망을 가져보자.

어쨌거나, 식인행위가 어느 정도라도 있었다면 식인종, 아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식인풍습을 지닌 인구집단’ 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써놓고 보니 동어반복이네.

옆으로 새는 얘기지만, 만일 책에 이런 논리로 식인종은 있었다고 서술했으면… 여러 언론에 책소개 기사가 나가고 나서 며칠 후 인x이트 같은 곳에서 “식인종은 있었다! xx만 년 전 yyy 유적지에서 식인 증거 발견.”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을 것 같긴 하다. -_-;;

종이란 무엇인가

문: 지구 상의 모든 생물학자들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죽이고 싶다면 어떤 방법을 쓰면 될까?
답: 모든 생물학자들을 엄청나게 커다란 강당 안에 몰아넣고 ‘종의 정의에 모두가 동의하기 전에는 아무도 여기서 못 나간다’ 고 하면 된다.

어떤 교수가 수업시간에 하던 농담이다. 저렇게 하면 유혈이 낭자하게 싸움이 일어나 한 명만 남고 다 죽은 후, 그 한 명마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고 자살할 거라는… 우스개소리치고는 역시 좀 끔찍하지만, ‘종’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만큼 제각기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과장스럽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종의 개념을 주제로 한 책도 있을만큼 어려운 개념이다. 아니 그게 왜 어렵냐고?

종의 정의를 말해보라고 하면 대개는 교과서에서 본 듯한, ‘자연상태에서 교배하여 생식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집단’ 이라는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 (biological species concept) 을 이야기한다. 개념적으로는 꽤 깔끔해 보인다. 교과서의 개념들이 많이들 그렇듯이, 실세계에서 생물들을 관찰한 사례들을 보기 전까지는.

생식적인 격리를 기준으로 종을 나눌 경우, 웬만한 진화 관련 교양서적을 보면 나오는 고리종 (ring species) 이 대표적으로 난감한 사례다. 그 외에도 수십 만 년 동안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대륙에 격리되어 있어 다른 종의 악어로 분류되어 있는데 악어농장에서 어쩌다가 같이 두었더니 멀쩡하게 교미해서 알을 낳고 새끼가 태어나더라.. 하는 경우도 있다 (주워들은 얘기라 문헌을 찾아보진 못했음).  비교적 가까운 관계이지만 사람들의 인식에는 뚜렷하게 다른 종류의 개과 동물들인 늑대 (혹은 개) 와 코요테의 경우도 코이독이라든가 코이울프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고, 고양이과 동물에서도 서벌과 집고양이의 잡종인 사바나캣 등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생물의 종이라는 것이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자연상태에 있는 동물들끼리 정말 교미를 해서 생식 가능한 새끼를 낳는지 일일이 다 관찰할 수 없다는 것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화석으로 가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데, 오래전에 죽어 화석이 된 개체들을 교미시켜 볼 수도 없고… 애초에 생물학적 종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형태학적 종의 개념 (morphological species concept) 을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형태를 보고 종을 구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책에도 언급이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학자의 성향에 따라 조금만 형태가 달라도 새로운 종이라고 보는 스플리터(splitter) 와, 어지간한 차이점은 종 내 변이로 보고 다 한 종으로 묶어버리는 럼퍼(lumper) 가 있다. 이런 건에 있어서 유독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거나, 혼자서 엄청난 수의 신종을 보고하는 별난 사람도 있기는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마련이긴 하지만 스플리터냐 럼퍼냐를 따지기에 앞서 형태학적으로 종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는 답하기가 쉽지 않다. A 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100 개의 표본이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면 이들은 한 종에 속하는 군집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A 에서 100 km 떨어진 B 지역, 시대가 조금 다른 지층에서 발견된 전반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일부 모양에서 약간 차이가 있는 표본들은 같은 종일까 다른 종일까? 혹은, C 지역에서 뚜렷하게 다른 형태를 지닌 화석이 발견되어 완전히 별개의 종이라고 보고해놨는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A 지역과 C 지역의 중간 쯤에 있는 여러 지역의 화석을 발굴해 보니 그 형태가 A 와 C 의 중간 정도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면 (마치 앞에서 언급한 고리종의 경우와 비슷하게) A 와 C 의 표본들은 같은 종일까 다른 종일까? 중간 어디엔가 선을 그어서 다른 종으로 구분한다면 어느 지점에 그어야 할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고안되었고, 형태를 수치화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구분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인 형태측정학 (morphometrics) 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다면 정말 그들은 다른 종일까? 형태가 상당히 다르더라도 생물학적 종의 개념으로 볼 때는 생식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인구집단을 기준으로 볼 때 평균적으로 키가 매우 큰 네덜란드인과 평균적으로 키가 작은 편인 일본인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과정에 생물학적인 문제는 없을테니 이 둘은 같은 생물학적 종에 속한다. 하지만 100만 년 후 네덜란드인의 집단매장지와 일본인의 집단매장지가 발견되어 유골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면 둘을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형태학적인 종의 개념에 따르면 이 둘은 다른 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내가 보는 관점은 종의 상위 개념들, 즉 속, 과, 목, 강, 문, 계 등 린네식 분류체계 자체가 엄청나게 많은 수의 변이로 이루어져 있는 자연세계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임의로 구획짓고 나누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유전자가 퍼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유성생식이든 무성생식이든 종 간의 장벽을 뛰어넘든 어떻든 유전자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 눈에 보이는 형태를 기준으로 구분해 놓고 이것이 절대적인 장벽인 양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고, 생물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기회가 생기면 그게 무슨 방법이든 신경쓰지 않고 그저 유전자를 퍼트릴 뿐이다. 당연히 사람이 만들어놓은 체계에 편의상 이러한 분류체계를 사용하더라도 이런 한계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 좋다. 분류체계의 임의성에 대해서는 예전에 브론토사우루스에 대해 쓴 글에도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사람 속의 많은 종들을 둘러싼 명칭, 재명명, 어느 것이 독립된 종이고 어느 것이 아종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혼란을 들여다 볼 때는 종의 개념, 아니 인간이 만들어낸 분류체계의 한계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린네의 분류체계가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생물을 어떻게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여기까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별개의 글로 쓰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면 그 다음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받은 느낌은, 고인류학 입문서로 매우 뛰어나다는 것. 일단 글이 매끄럽다는 게 큰 장점이다. 현직 교수로 연구를 계속 하면서 쓴 글이니 현재 인류학의 경향과 주요 관심사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다루었으리라고 짐작하는데, 이 부분은 내가 인류학에 대해 잘 모르니 짐작만. 그러면 그 다음은? 과학책 독자로 바라는 점이라면 이상희 교수 본인의 연구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 글과 책이 나오면 좋겠다. 중간에 조금씩 언급이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인들 대상으로 넓은 범위의 주제들을 다루다 보니 본인의 연구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보니 독자들의 호응도 좋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심화과정에 해당하는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도 적잖이 있을 법하다. 매체 등에서 우리나라 학자들에게는 최대한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면서 외국 석학(?)들은 어려운 얘기 막 해도 ‘오오!’ 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이종필 박사의 글에서 보았던 것 같다. 교양과학서 독자들에게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방정식을 풀라고 하면 곤란하겠지만, 어려운 내용은 쉽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어려운 거지, 뭐든 다 쉽게 설명할 수 있으면 학자들이 왜 평생 밤잠 설쳐가며 연구를 하나. 입문서 독자들과 논문을 직접 읽을 수 있는 학자들 사이의 독자층이 물론 적기는 하겠지… 뭐 그건 출판사 사정이니 출판사에서 알아서 하실 일이고, 저같은 사람은 일단 그런 책을 원한다는 말을 여기에 남기는 것으로 독자 된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네.



카테고리:신생대, 현생, 의견, 인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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