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켄터키에 위치한 창조박물관을 방문하고 감상을 기록한 글입니다. 페이스북의 [과학과 신학의 대화] 그룹의 글들을 (모태신앙이었지만 창조과학 덕분에(!) 무신론자가 된지라 가입은 안 하고) 둘러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올려봅니다. 창조과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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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여름, 켄터키의 창조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무지하게 더운 여름날, 북아메리카 고생물학 컨벤션 (North America Paleontological Convention) 에 참석한 사람들이 단체관람을 간 것이었는데, 이게 나름 구경거리(?)였는지 여러 언론에서 취재를 오고 그랬다. 박물관 측의 환대를 받으며 수십 명의 고생물학자들이 단체로 창조박물관에 들어가서 긴 줄을 기다리며 전시된 것을 둘러봤다.
전시관 초반부에 설치된 어떤 스크린에서는 어떤 창조주의자가 나와서 공룡 화석을 발굴한다는 과학자를 옆에 보여주며 대략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공룡 화석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공룡 화석이 몇 천만 년 (혹은 몇 억 년) 전에 만들어 졌다고 생각을 하죠.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화석을 보고 있지만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죠.”
음.. 그렇구나..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아니, 잠깐! 당신은 생각을 안 하는 거잖아! 그 화석이 어떤 암상의 어떤 지층에서 나오고 그 지층의 연대를 어떻게 가늠하고,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동일하다고 생각되는 연대의 지층들과 어떻게 대비되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하나도 들여다 보지 않고 ‘우리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라고만 말하면 되는 건가? 화석이 발견된 그 암석의 종류가 뭔지 알기는 해?
앞에 있는 발굴현장의 모형과 그 위에 매달려 있는 스크린을 보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던 모양이다. 관람을 다 끝내고 나서 점심시간에 내 옆에 앉았던 중국계로 보이는 뉴욕타임스 기자라는 사람이 오전에 내가 웃는 걸 봤는지, 아까 왜 웃었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게.. 이거 완전 무슨 세뇌교육을 위한 박물관 같잖아요.”
스크린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서 나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창조박물관을 관람하러 온 것은 이 창조주의자들이 얼마나 멍청한 전시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지 그 어리석음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동안 뭔가 좀 토론이 될 만한 꺼리를 이들이 만들어 내기는 했는지 알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스크린과 전시관 초반부의 전시물들을 보면서 내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이들의 목표물은 과학자가 아닌 것이다. 뭔가 과학적인 논쟁, 혹은 그들의 논리를 논파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면 나는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으며,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초반부의 전시물들은 각각의 과학적인 내용에 대해 과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창조주의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교하면서 그 근거로 (당연히) 성경을 제시하고 있었다. 약간 놀랐던 것은.. 공룡이 노아의 홍수 때 살아남았다가 그 후에 멸종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나름 신선한데? 어쨌거나, 계속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다가, 전시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성경,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들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어두운 면들을 보여주는 어두운 복도가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데, 시끄럽고 음침한 뒷골목, 파괴된 가정, 악으로 물든 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그 복도를 지나가면서는 나도 은근히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그 다음 단계는 밝은 분위기로 관람객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면서 회복, 또는 구속을 테마로 하는 전시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창조-타락-구속이라고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전시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노아의 방주라든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육식 공룡의 모습을 보여주는 에덴 동산, 단편적인 공룡 전시, 일부 창조과학 관련 내용 전시 등이 있었지만 전시관 전체의 테마는 확실히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관람자들에게 깊이 각인시키려는 구성이었다.
창조박물관이라고 하면 얼핏 생각하기에 사탄에 물든 세속적 과학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독자적인 과학 논리를 구축하여 그것을 기독교인 및 비기독교인들에게 설득하려는 박물관인 것 같지만 그건 이들의 훼이크이거나 내가 멋대로 상상해낸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사실 이것은 다음 세대를 일찌감치 세뇌시켜 근본주의 기독교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나도 어지간히 순진하구나.
창조박물관 방문의 제일 큰 수확은 저 깨달음이었고, 그 다음으로 큰 수확은 나름 참신한 창조과학 이론이었다. 이름하여, 떠있는 숲 (floating forest). 이게 뭐냐 하면, 석탄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한 많은 나무들이 노아의 홍수 때 어떻게 한 번에 묻힐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홍수 이전의 바다(?)에는 식물로 이루어진 커다란 섬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orz 그러니까 물 위에 해초들이 떠다니는데 그 위에 다시 큰 나무들이 자라서 섬을 이루었다는 것이지. 흙은 필요 없나? 부력은 어떻게.. 아, 해초 사이에 역청을 발라 두면 될지도 모르지. 지구는 어쩐지 커다란 거북이 등 위에 놓여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응? 그건 기분 탓이라고? 여하튼 이 떠다니는 숲 이론은 궁창 위의 물 층 (water canopy) 이후 가장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훌륭해! 병신같지만 왠지 멋잇어!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는 괜찮아 보이는 공룡이 그려진 머그컵이 있었다. 인간의 우둔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나 사가지고 갈까.. 생각을 했는데, 단돈 1 전도 이곳에서 쓰기 싫어서 그만 두기로 했다. 입장료를 낸 것만으로도 과도한 지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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